새로운 시대의 바퀴가 굴러간다. 전류가 흐르는 강철의 심장, 그 중심에 기아가 있다. 자동차 산업이라는 거대한 강을 건너온 이 브랜드는, 지금 또 한 번 물살을 가르고 있다. 출발선에 서서 손에 쥔 것은 50만 번의 선택이었다. 바로, 기아의 EV 시리즈가 5년 만에 누적 50만 대 판매의 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기차는 어느덧 낯선 풍경이 아니다. 거리마다 번쩍이는 신형 모델들이 지나가고, 디젤의 거친 숨소리는 점점 잦아든다. 하지만 이번 성적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바야흐로 ‘전기차 대중화’의 문턱을 넘어선 시그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글로벌 판매 실적과 모델별 특징

기아 전기차 글로벌 판매 성장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누군가는 ‘이만하면 잘한 것 아니냐’고 묻겠다. 실제로 EV 시리즈의 여정은 속도전 그 자체였다. EV6로 첫 발을 뗀 것이 2021년, 5년 남짓한 시간 동안 485,055대가 팔렸다. 흥미로운 점은 10대 중 8대가 국내가 아닌 해외를 목적지로 떠났다는 사실. 길 위에서 더 자주 마주치는 것은 서울보다 파리, 런던, 베이징의 풍경이었다.

모델별로 들여다보면, EV6가 단연 주인공이다. 전 세계에서 팔린 282,639대 가운데 무려 76퍼센트가 국경을 넘었다. 최근 등장한 소형 모델 EV3는 이미 101,162대가 출고됐고, 대형 SUV EV9 역시 79,312대로 이름값을 했다. 가장 늦게 합류한 EV5도 어느새 18,621대의 주행 기록을 쌓았다.

현대차와의 신경전 속 의미 변화

기아 전기차 판매 경쟁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자동차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이름, 바로 현대차다. 이 두 회사의 경쟁 구도는 때로는 형제처럼, 때로는 라이벌처럼 전개된다. 현대차는 이미 올 1월에 아이오닉 시리즈로 50만 대 고지를 넘었다. 아이오닉5·6·9가 주역이었고, 특히 아이오닉5 한 대가 전체 판매의 80퍼센트에 육박한다니, 꽤나 굵직한 존재감이다.

더욱이, 플랫폼의 진화도 주목할 만하다. E-GMP라는 이름의 바닥 플랫폼이 실내 공간부터 배터리 충전 방법까지 바꿔놓았다. 덕분에 아이오닉5와 6는 세계 무대에서 기술력까지 인정받았다.

다목적 시장과 소형차 전략의 확장

기아 전기차 소형차 전략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이쯤에서 기아의 다음 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전기 SUV, 세단만으론 부족하다는 듯, 목적기반차량(PBV) 시장에도 눈을 돌렸다. 얼마 전 등장한 PV5를 시작으로, 2027년 PV7, 2029년 PV9까지 새로운 얼굴을 속속 선보일 계획이다.

또 한 편에서는 소형 전기차에 방점을 찍는다. 내년 유럽 시장에 EV2라는 이름의 작은 전기차가 나온다. 도시의 골목골목을 누빌 새로운 주자다. 기아는 2030년까지 유럽에서 133,000대, 국내에서 73,000대의 PBV 판매 목표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전동화 시장의 새로운 전환점

이제 전기차 레이스는 최고 속도만 겨루는 시대가 아니다. 양적 성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차를 언제, 어디에 내놓을지 전략적 판단이 중요해졌다. 50만 대라는 숫자 뒤에는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가 숨어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맞춤형 이동 경험’이라는 사실을 자동차 기업들은 점점 더 깊이 깨닫고 있다.

기아의 다음 5년, 어떤 모습일까. 엔진 소리 대신 조용한 전기 모터의 운율이 도시에서 농촌까지 번져가고 있다. 혁신의 무게를 짊어진 바퀴는, 이제 또 다른 길로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