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판 한 장이 만든 파장은 생각보다 깊었다. 한때 세계 시장을 누비던 중국산 철강이, 각국의 견고한 장벽을 만나자 새로운 출구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방향이 뜻밖에도 한국을 향한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감돈다.

얼핏 보면, 타국의 수입 규제 덕에 국내 기업들이 손쉽게 반사이익을 얻을 것 같지만, 실제 현장에선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쏟아지는 중국산 물량은 오히려 국내 철강업체의 숨통을 죄고 있다.

수입 규제 확산과 한국 시장의 변화

중국산 철강 수입 증가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2018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보호무역의 문을 굳게 닫은 이후, 유럽연합과 캐나다, 인도, 베트남 등도 줄줄이 중국 철강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있다. 최근 캐나다는 외국산 철강에 절반에 가까운 세금을 더하겠다고 선언했고, 베트남에서도 중국산 제품에 강력한 반덤핑 조치를 시행했다. 주요 수출길이 꽉 막힌 중국 철강의 행선지는 자연스럽게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나라로 옮겨간다. 그중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우회 수출 전략의 다변화

중국산 철강 우회수출 증가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한국 정부 역시 지난 몇 달 사이 후판과 스테인리스스틸 후판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등 방어막을 세우는 중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포장만 바꿔 들어오는 컬러강판, 통계를 피하는 우회 수입 등 각종 방식이 동원되고 있다. 중국산 철강이, 마치 거대한 강물처럼 여러 갈래로 흘러 국내 시장에 스며드는 셈이다.

교묘해지는 중국의 우회 방식

중국산 철강 우회 수출 증가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중국은 단순히 직접 수출하는 대신, 빌릿(반제품)을 제3국에 보낸 뒤 현지 가공 과정을 거쳐 최종 수출처로 돌리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품 라벨은 베트남, 멕시코 등 다른 나라 이름이 붙지만, 실상 그 뿌리는 중국에 있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실체 없는 수출 신고나 허위 가격 책정으로 세금 부담을 회피하려는 시도도 감지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생산의 ‘녹이고 붓는’ 시점까지 추적하는 새로운 원산지 기준을 도입하며 대응 강도를 높이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의 실상과 통계 변화

중국산 철강 수입 증가 현황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중국산 저가 공세가 국내 시장을 뒤흔들며, 시장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뚝 떨어졌다. 한 곳은 1년 전보다 10명이 일하던 곳에서 8명만 남은 수준으로, 또 다른 곳은 거의 5명 중 4명이 빠진 셈이다. 국내 조강 생산량 역시 2019년 7100만 톤을 넘기던 시절에서 최근엔 약 6600만 톤으로 줄었다. 중소기업들은 설비 가동률이 20%선 아래로 내려앉았고, 일부는 문을 닫을 위기에 내몰렸다.

중국산 철강 수입량도 지난해 870만 톤에 달하며, 불과 1년 전보다 10개 중 3개꼴로 증가했다. 자연히 국내 업체들은 가격 결정권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공급망 안정과 대응의 과제

정부는 반덤핑 관세 인상, 원산지 검증 강화 등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산의 다층적 우회 전략을 한 번에 봉쇄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일부 수요산업에서는 일시적으로 철강값 인하의 이득을 본다지만, 장기적으로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향후 대응과 산업 구조 변화 필요성

한국 철강산업은 지금, 단순한 경기 침체나 일시적 수입 급증 문제가 아닌 구조적 도전에 직면했다. 가격 질서가 무너지고, 중소업체는 설 땅을 잃고 있다. 단기 규제나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수입 감시 강화, 원산지 표시 기준 보완, 기업 간 협력 등 보다 체계적이고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철강 한 장에 실리는 값만이 아니다. 산업의 뿌리와 미래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시점. 다음 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정부와 업계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